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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5

스토너 · 존 윌리엄스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스토너 - 교보문고세상이 잊고 있던 20세기의 걸작, 늦고도 새로운 감동을 전하다!product.kyobobook.co.kr

“우리 회사에 너보다 더 양철나무꾼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스토너를 읽고 감명받았대. 너도 읽어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식사 중 이 책을 소개받게 되었다. 2년 정도를 나와 함께 일하면서 회사에서의 나를 가까이 들여다보았던 사람의 추천이라니 흥미가 일었다. “아닌데, 나 결혼하고 많이 감성적이 되었어.” 툴툴거리면서도 가까운 시일 내에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 이게 웬걸 사무실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안 읽어 볼 수 있나.

소설을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소설은 이야기에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읽기가 정말 수월하다. 스토너도 정말 수월하게, 순식간에 다 읽게 되었는데 막상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주인공인 ‘스토너’의 일생 그 이상도 이하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살던 스토너가, 대학에 오게 되어 교수가 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연애도 한 번 했다가, 병에 걸려 죽는다. 어떤 거대한 사건이 이야기를 끌고 가거나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지도 않고, 시대적 배경은 순간순간 혼란스럽지만(두 번의 세계대전이 지나간다) 그것이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건조하고 차분하게, 어떻게 보면 지루하게 스토너의 일생이 소설 내내 이어진다. 게다가 표현 방식은 또 어떻고?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묘사며 주인공의 태도까지 모든 일이 세피아톤 필터를 거친 느낌에 가깝다. 작가와 이야기 속의 주인공, 독자인 나 중에 내가 제일 화내고 긴장하고 애태운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번 허탈할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건조한 내용과 글을 몇백 페이지에 걸쳐 흥미를 잃지 않고, 오히려 빠져들어서 읽게 만든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전반적으로 피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게 피로한 게 아니고, 스토너의 삶이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듯 피로에 푹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으면서 화가 많이 났다. 왜 이렇게 수동적이지? 왜 아내에게 반항하지 않지? 왜 연인이랑 도피하지 않지? 이런 생각들이 들어서 머리끝까지 답답함이 차올랐다. 그런데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스스로의 생각을 가만 들여다보니 화가 나는 순간들 옆에 내가 좋아하는 그의 삶의 순간들이 남아 있었다. 이런 순간들을 읽을 때에 나는 내가 스토너의 삶에 한순간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스토너가 처음으로 문학 수업에서 무언가를 느꼈던 순간, 자격 미달의 대학원생 심사에서 반대의견을 내던 순간, 아내와의 관계와 학교에서의 생활 모두 파괴되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순간… 그러고 나니 내가 화냈던 일들이 다 의미가 없다, 아니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문학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의 인생은 더 행복했을까? 아내에게 반하지 않았더라면, 아예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더 나은 삶이었을까? 그가 다른 선택을 해서 그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스토너는 어쩔 수 없었다. 인생에서 스스로로부터 나오는 것은 없다. 모든 것들은 밖에서 온다. 어떤 것들은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또 다른 것들은 안에 담겨 머문다. 지나가는 것을 억지로 잡을 수 없고 담긴 걸 내칠 수도 없다.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일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삶의 순간들도, 답답하고 화가 나는 순간들도 전부 다 그렇다. 모든 삶과 마찬가지로 그의 삶도 그렇게 이루어졌고 그는 그걸 이해하고 그렇게 살아갔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서 어쩔 수 없다며 빙긋 웃는 그의 모습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긴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스토너 p350

최근에 리센느가 인기다. 오랜 무명 기간 동안 꾸준히 노력해오다가 이번에 자체컨텐츠가 터지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에 7시간씩 라이브 방송을 하던 영상,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무대하는 영상이 발굴되며 감동받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응원하는 건 노력한 사람이 원하는 결과에 닿는, 삶에서 가끔 일어나는 우연을 귀하게 아껴 주는 게 아닐까? 사람들의 마음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인지 스토너의 삶이 떠올랐다. 리센느 이전 그리고 이후로도 누군가는 노력과 상관없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그건 우리 인생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런 우연이 설령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삶이 당연히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움을 생각해보며.